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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절 노동운동] ② 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주체적 투쟁 ‘YH 사건’

[2021-05-20, 14:53:30] 상하이저널

“보고 싶은 엄마!… 돈 많은 회장은 미국으로 도망가고 없고 사장들은 자기들만 잘 살겠다며 지금 우리 근로자들을 버렸습니다. 회사 문을 닫겠다며 폐업공고까지 내버렸답니다. 그러나 저희 근로자들은 비록 힘은 약하나 하나같이 똘똘 뭉쳐 투쟁하고 있습니다. 특히 엄마가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사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사람이어서 어떤 일을 꾸밀지 모르니, 내 편지가 아니면 그 어떤 편지를 받더라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고 있으니까 이 딸을 먼저 믿으시라는 겁니다.”
- 김경숙 열사 1979.8.7 편지 中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다. 60~70년대에 부흥한 다수 기업들은 눈부신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손꼽힌다. 장시간 노동은 국민들의 근면성의 성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초고속 경제성장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동반하지 못했고, 최소한의 근로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던 시절이 존재했다. 1970년, 이에 분노한 전태일의 분신 자살은 한국 사회가 열악한 노동조건 문제에 눈을 뜨게 된 시발점이 됐다. 

1970년대에는 경공업에 종사하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주도했다. 군사독재정권 아래 가부장주의가 만연하던 당시, 여성들의 노동조합 활동은 억압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여성노동자들은 꿋꿋이 주체의식을 키우며 투쟁을 이어나갔다. 이 시기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노동운동, 흔히 ‘YH 사건’이라 불리는 농성을 재조명한다.

사건의 발단

1960년대 후반, 한국이 가발 수입국으로 떠오르며 YH무역은 창사 몇년 만에 직원 4000명의 국내 최대 가발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수출 1000만달러를 기록하며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지만, 가발공장 여성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은 형편없었다. 하루 13~14시간 가량의 장시간 노동의 대가로 한 달 평균 28000원,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았다. 여공들을 졸지 못하기 하기 위해 타이밍 등 각성제를 먹이는 일도 잦았다. 

1977년에 들어 회장 장용호가 수십억원의 돈을 미국으로 빼돌림에 따라 YH는 휴업 공고를 내고 대대적인 인원 감축을 실시했다. 가발을 만들던 여공들을 봉제과로 보내 자발적인 퇴사를 유도하는 등 수백명의 노동자를 내쫓았다. 1979년 3월 30일, 회사는 여공들의 임금 수개월 치를 체불한 채 일방적으로 폐업을 공고했다. 

스무살 남짓의 여공 수백명은 공장 기숙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노동조합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농성을 이어가며 회사 정상화를 요구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그해 8월, 두 번째 폐업공고가 붙고 기숙사의 물과 전기까지 끊겼다. 공장에는 여공들만 남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이는 하나도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경찰이 농성 해산을 시도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신민당사 농성


벼랑끝에 몰린 YH 여공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신민당사 점거를 택했다. 1978년 12월 총선에서 신민당은 헌정 사상 최초로 여당보다 높은 득표율로 제1야당이 됐다. 이듬해 5월 김영삼이 총재에 당선되며 신민당은 대여 투쟁 강도를 높여가고 있던 참이었다. 8월 9일, 신민당사 강당에서 187명의 조합원이 농성에 돌입했다. 

각종 언론이 이를 보도하기 시작했고, 각계의 격려 방문이 줄을 이었다. 언제 해산될지 모르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여공들은 단합을 외치며 버텨나갔다. 하지만 불과 이틀도 지나지 않은 11일 새벽 2시, 1000명이 넘는 경찰이 당사에 들이닥쳐 사다리차, 소방차, 물탱크 등을 동원해 여공들을 끌어냈다. 여공들 뿐만 아니라 현장의 취재기자, 신민당 의원 등도 무차별적으로 폭행, 연행됐고, 23분 만에 농성 해산명령이 종료됐다. 이 과정에서 건물 옥상에 올라간 여공들 중 노조대의원 김경숙(21)이 추락해 사망했다. 노조 지부장, 사무장 등은 진압 직후 구속되고 나머지 여공들은 경찰에 의해 강제 귀향길에 올랐다. 

‘여공 1명 사망’

당시 경찰은 김경숙의 죽음을 강제 진압 직전 스스로 동맥을 끊은 투신자살로 발표했다. 각종 신문에는 ‘여공 1명 사망’이라는 단신 기사로 실렸고, 뒤이은 정치적 격변 속에서 김경숙의 사망은 묻혀버렸다.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추락 사망한 시점이 진압 개시 이후였고, 동맥 절단 흔적이 없으며, 손등에 쇠파이프로 추정되는 둥근 관에 가격당한 상처가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밝히며 김경숙의 죽음이 경찰의 과잉 진압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김경숙은 평범한 삶을 꿈꾸던 젊은 여성이었다.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와 고달프게 일하면서도 동생을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야근, 특근을 가리지 않고 몸을 혹사시켰다. 회사의 부도덕함을 깨닫게 된 후로는 야간학교를 다니고, 노동조합에 가입해 인식의 폭을 넓혔다. 스무살의 나이에 노조 대의원을 맡은 후 힘겨운 상황에서도 동료들을 북돋고 투쟁을 이어나간 당당한 노동자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H사건을 재야인사 등이 기획주도했다고 평가하는 연구들이 많다. 박정희 정권은 ‘‘일부 종교를 빙자한 불순단체와 세력이 산업체와 노동조합에 침투해 노사분규를 선동하고 사회불안을 조성한 사건’으로 이를 규정했다. 어리고 배움이 짧은 여성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농성을 주도 했을리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고은 시인은 김경숙을 ‘한서린 처녀의 삶을 끝낸,’ ‘민족의 꽃송이’라고 표현했다. 70년대 여공을 향한 편견이 주도적으로 노조를 이끌어간 노동자를 한낱 피해자의 자리에 가두게 됐다.

최근에 들어서 당시의 여성 노동자들이 재평가되는 추세지만, 편견의 뿌리는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 깊이 박혀있을지도 모른다. ‘노조’, ‘여성 노동자’, ‘농성’, 모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단어는 아니다. 사람들은 빈곤과 노동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거리를 둔다. 40여년 전과 비교해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YH사건은 한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다. 8월 11일 농성 해산 이후, 10월 4일 김영삼 총재의 국회 제명에 이어 부마항쟁이 시작됐고, 10.26으로 유신 체제가 종말을 고했다. 사회가 그들을 ‘공순이’라 낙인 찍었을 때, 여공들은 주체적인 노동자로서의 투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몸소 보여주었다. 70년대의 고속성장과 유신체제의 몰락은 수많은 이들 노동자들이 이룬 역사가 아닐까.

사진 출처: 경향신문
주요 출처: KBS 인물현대사 2005.2.4 방영분, 주간경향 [여성 노동운동 ‘이 장면‘](2)꽃다운 여공 말고 불꽃처럼 싸운 김경숙 

학생기자 이나영(SA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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