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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엄마 밥 아빠 밥

[2021-11-22, 16:01:09] 상하이저널

밥타령을 그리 하는 편이 아니다. 한 끼 정도는 건너뛰는 것이 일상이었고, 주전부리로 때우거나 맥주 한 캔으로 대신할 때도 많았다. 요즘처럼 세끼 꼬박 따신 밥을 챙겨 먹었던 적이 언제였었나싶다. 그것도 엄마가 해주는 엄마 밥을. 

잠시 한국에 와서 건강 검진도 받고 온 김에 이런저런 일도 보고 있다. 친정에서 지내는 동안 엄마는 부지런히 내 식사를 차리셨다. 오랜만에 온 딸이 얼굴도 까실하고 비실비실해졌다고 안쓰러워하셨다. 예전 같았으면 간장게장이나 보리굴비에 밥 한 그릇 뚝딱 먹었을 딸이 입맛 없다고 깨작거리는 모습이 영 신경 쓰이셨나 보다. 얼굴 마주칠 때마다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으시고, 딸이 좋아했던 반찬들을 만들어 내 오신다. 밥때마다 더 먹이려는 부모님과 그만 먹으려는 딸의 대화는 한없이 되풀이된다. 

밥도 한 숟가락 가득 떠서 맛있게 먹으라고 잔소리도 하신다. 일흔이 넘으신 부모님과 곧 오십을 앞둔 딸인데도 그렇다. 요즘 부모님은 딸이 밥 잘 먹고 잘 쉬어서 올 때 보다 생기가 돌고 살도 쪘다며 흐뭇해하신다. 실제로 엄마 밥만 한 보약이 있나 싶을 정도로 효과를 보는 중이다. 잃었던 입맛도 돌아오고 있고, 피로감도 훨씬 덜하다. 외동딸 마냥 부모님의 온 관심을 받으며, 푹 익은 한국의 가을을 15년 만에 누리며 호강하는 중이다.  

 


반면, 상하이 가족들은 처음으로 맞는 엄마 부재에 고군분투하며 적응해 가는 중이다. 오랫동안 요리에 관심을 끊었던 남편은 다시 요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밤잠 줄여가며 요리 동영상을 찾아보고, 다음 날 아침 아이들 식사를 준비하고 도시락을 싼다. 메뉴도 점점 다양해지고, 솜씨도 발전하는 것 같다. 얼마 전 도시락 반찬으로 싸 준 불고기가 엄청 맛있었다며 큰 아이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아이들 시험 기간 동안 남편은 본격적으로 보양식 집밥을 선보였다. 전복 버터구이를 하고, 꽃게살을 일일이 발라내어 꽃게 파스타를 만들었다. 마늘 버터 스테이크를 굽고, 구운 연어에 데리야끼 소스를 얹었다. 양파를 40분 간 볶아 카라멜라이징을 한 뒤 해산물을 넣고 짜장라면을 업그레이드시키고, 바지락을 해감해 칼국수를 끓였다. 어느 주말은 이틀 여섯 끼를 다 만들어 아이들을 먹였다고 했다. 남편은 반찬가게나 식당에서 주문하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 먹이고 싶어 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고 했다. 회사 일이 조금만 덜 바빴으면 더 잘해서 먹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했다. 나보다 더 아이들 밥에 진심이었고, 정성을 쏟았다. 너무 무리해 병이라도 날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내게 영상전화를 걸어 투덜거리고 어리광을 부리던 둘째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전화하는 횟수가 줄었다. 화면 속 아이들의 표정도 점차 밝아졌다. 아빠 밥을 먹으며 아이들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간간히 지인 찬스까지, 아이들은 인생 최고의 따스하고 화려한 집밥을 경험 중이다. 

한국에서 나는 엄마 밥을 먹으며, 상하이에서 아이들은 아빠 밥을 먹으며 몸과 마음이 살찌고 있다. 가족들에게 나의 부재가 미안하고 내내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딸 바보 상위 1%에 성실함까지 타고난 남편과 자립적이고 씩씩한 아이들 덕분에 나의 마음도 한결 가볍다. 몇 년 뒤에 아빠 밥을 떠올리며 나눌 추억도 많을 것이다. 

상하이에 돌아가면 요리 솜씨에 밀려 주방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남편 밥이 기대된다.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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