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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126] 다크룸

[2022-01-06, 21:25:36] 상하이저널
수전 팔루디 | 아르테(arte) | 2020.01.13
수전 팔루디 | 아르테(arte) | 2020.01.13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다크룸>은 ‘백래시’의 저자, 페미니스트 저술가로 유명한 수전 팔루디가 연락이 끊긴 지 25년 만에 75세에 성전환 수술을 하고서 여성이 된 아버지를 만나 그를 규정해왔던 정체성과 삶의 이면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이내 당황스러워졌다. 그녀의 아버지는 성별 이분법 사회의 트랜스젠더로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피해자가 아닌 듯 보였다. 팔루디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가족들과 교감이 없었으며 마초적이고 가부장적인데다 심지어 가정폭력을 행사하던 폭군 같은 사람이었다. 딸, 팔루디는 혹시 아버지가 그런 비난 받을 만한 삶에 대한 빠른 정정의 방법으로 성별 재지정 수술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내가 성별 재지정된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생물학적 성 특징과 스스로 느끼는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으면서 혼란, 우울, 부적응을 겪다가 마침내 성전환 수술을 감행하는 ‘피해자’였다. 팔루디의 아버지는 그런 피해자로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착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평소 가정폭력에 반대하는 내가 팔루디 아버지의 변신을, 그 살아온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이 책 중반까지도 계속된 고민이었다. 

팔루디도 처음엔 여성이 핸드백을 가지고 다니는 방식이 생물학적인 특성이라도 되는 양, 실리콘 가슴을 지니고 다니는 아버지의 어설픈 흉내내기를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함의를 발견해내는 탐험을 시작한다.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를 규정해온 유대인, 헝가리인, 미국 이민자 남성, 여자로서 인정받고 싶은 트렌스젠더 여성 등 정체성이 만들어져 온 과정을 탐구하고 정체성에 대한 아버지의 강박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아버지 스테파니 팔루디는 ”하늘에서 뚝 떨어져 여성의 공간을 침범하는 괴물이 아닌, 자신의 시간을 살면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온 맥락 있는 존재“(손희정 글)임을 깨닫는다. 

팔루디의 아버지는 여성성을 극대화한 옷을 찾아 입고 젠더 수행이라고 일컬어지는 행동 방식을 채택하고 “여자는 이래야 해”라는 성역할을 강화시키는 성전환된 여성으로 보였다. 지금까지 (생물학적)여성들이 싸워서 쟁취한 성평등 역사를 후퇴시키는 듯 보이는 그를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책을 읽어가며 계속 이런 불편한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사회가 ‘피해자다움’, 전형적인 피해자상을 요구하는 것에는 반대하면서 실은 다른 피해자에 대해 여전히 틀 안에 넣고 그 틀에 맞지 않으면 피해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책을 읽으며 트렌스젠더는 경계에서 살고자 하는 게 아니라 한 성별에서 다른 성별로 건너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팔루디의 방대한 트렌스젠더 관련 취재를 읽으며 어떤 옷을 입고, 특정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태도를 보인다 해도 그 사람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굳이 성전환을 위해 위험하고 비싼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게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는데, 개개인의 삶을 형성하고 해체하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조건들과 역사를 탐구하는 노력 대신, 정체성을 단일하고 포괄적인 고정된 위치라는 범주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체주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포괄적인 한 가지를 찾기보다 각자가 살아온 경험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인정하는 것이 페미니스트의 자질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팔루디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단 하나의 구분, 단 하나의 진정한 이분법은 삶과 죽음뿐임을 깨닫는다.
 
한 페미니스트의 솔직하면서도 집요한 탐구적 글쓰기가 내 내면의 편견을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신주영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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