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2년 전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나타났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온 지구가 들썩거릴 정도로 속수무책 당황했던 것도 잊은 채 그냥 저냥 일상을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3월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며칠 자택 격리를 취하라는 시정부의 통지에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던 봉쇄는 끝날 기미가 없다. 3월 겨울 추위의 끝자락에서 시작된 격리는 4월 상하이의 짧은 봄날을 삼키고 여름의 시작인 5월도 꿀꺽할 참이다.
뿔난 민심, 하지만 너무 쉬운 민심
아침부터 위챗 단체창이 시끄럽다. 정부가 보내준 구호품에 문제가 있으니 먹지 말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 유령 회사 제품 등 위생과 안전에 문제가 많았다. 주민들의 성 난 민심이 들끓었다. 중국 근현대사 경제 부흥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상하이 사람들이 시정부를 향해 이렇게 화난 것을 본 적이 없다. 결국 그들은 문제가 된 식품을 모아 정부에 항의하기로 했다.
긴 중국 생활에도 난 이방인이기에 그저 중국인들의 행동을 구경할 뿐 방도가 없다. 이튿날 거센 항의의 결과로, 시정부는 치약 하나와 샴푸 하나를 하사했다. 성난 민심은 곧바로 조용해졌다. 이렇게 쉽게 풀릴 분노였다니. 시시한 투쟁의 현장에서 남몰래 실망할 따름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중국어의 马上(mǎ shàng)과 差不多(chà bú duō)라는 단어는 중국인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처음 중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언제까지 일을 끝낼 수 있어요?라고 물으면 ‘马上(금방)’이라고 대답할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다. 중국인들에게 马上은 1분일 수도, 10분일 수도, 1시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差不多先生>이라는 소설에 보면 위중한 병 중에 의사가 아닌 수의사를 불러와 죽음에 이르러도, 의사나 수의사나 差不多 아니냐는 말을 남긴다. 정말 나 같이 성격 급한 사람 속 터지게 하는 소리다.
요즘 중국 친구들만 보면 봉쇄가 언제 끝날 것 같은지 습관처럼 묻는다. 물론 기대도 하지 않지만 그들의 대답은 马上 아니면 差不多와 다를 바 없다. 거의 관심이 없다. 스스로 소설 속에서 꼬집고 있지만, 불투명성에 대해 의문조차 갖지 않는 것, 존엄을 위협해도 저항하지 않는 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중국인들에게 만성화된 모습임에 틀림없다.
이번 봉쇄는 언제 끝날지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당분간 아큐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요즘 나의 화두는 ‘진지하지 말 것, ‘장점을 찾을 것’이다. 중국 생활에서 아큐식 정신승리법도 때론 필요하다.
두 달째 재택근무 중이다. 퇴근 시간에 끊지 못하고 일하던 워커홀릭인 나로서는 요즘처럼 가족과 긴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다. 딸들에게 집 밥을 해주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입시 스트레스에 치여 살던 고등학생 딸은 한껏 여유를 찾았고, 심지어 매일 외롭게 집을 지키던 우리집 강아지까지 행복하다. 봉쇄 탓에 잊지 못할 세월을 보내고 있으나, 또 봉쇄 덕에 우리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있지 않은가.
니모와 도리(brighte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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