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정말 쥐안(卷)하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대학 입시에 대한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진다. 내신을 챙겨야 할 뿐만 아니라 교내 동아리, 경시대회, 논문 등 준비해야 할 것들도 산더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속, 우리는 모두 네이쥐안(内卷 nèi juàn)의 피해자다.
노력만 하면 되는 시대는 갔다
흔히들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매년 그 노력의 기준은 높아지고 있고 이제는 영혼을 갈아 넣는 다고 해도 전과는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노력 인플레이션’ 현상을 중국 신조어로 ‘네이쥐안(内卷)’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미국의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의 책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에서 처음 소개됐다. 대량의 노동 인원을 투입했으나 1인당 생산량은 증가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 'involution’이라고 했고,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 네이쥐안이다. 예를 들면, 한 학생이 500자 독후감 과제를 800자를 써서 냈다면, 선생님은 그 노력을 가상히 여겨 칭찬할 것이다. 그러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학생들은 다음 숙제를 할 때 자연스럽게 500자 이상을 쓰게 될 것이다. 어느새 500자가 기준이었던 독후감 숙제는 1000자를 자연스럽게 넘겨야 하는 매우 힘든 과제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4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학교에서 GPA 3.8은 상위 20%에 드는 좋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학기 성적을 기준으로 현재는 3.98을 받아야 20% 안에 들 수가 있다. 여기서 ‘네이쥐안런(内卷人)’이 등장한다. 네이쥐안런이란 어쩔 수 없이 네이쥐안에 뛰어든 사람으로, 앞서 예를 들었던 친구가 칭찬을 받은 것을 보고 그 후 독후감 1000자를 써온 학생들과 같다. 일상생활에서, 네이쥐안은 어디에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 것이다. 네이쥐안과 노력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네이쥐안과 노력의 차이점
사실 이 문제로 학교에서도, 인터넷 상에서도 논쟁이 많다. 네이쥐안은 얼핏 들으면 노력을 비꼬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쩌면 무분별한 사용으로 네이쥐안은 이미 노력의 대명사가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네이쥐안은 동행끼리 한정되어 있는 자원을 서로 가지기 위해 의미 없고 무분별한 경쟁을 하여 노력에 비해 수익이 점점 낮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네이쥐안런은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효율이 낮은 노력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노력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능동적인 것이다. 본인이 한층 더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것은 노력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본인이 뒤쳐질 것만 두려워하는 것은 네이쥐안이다.
2020년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해 네이쥐안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본 뜻과는 다르게 노력하는 사람을 비꼬는 의도로 사용이 되기도 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친구를 보며 불안해하며 “너 정말 쥐안(卷)하구나”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냥 네이쥐안을 열심히 하는 거라고 생각해 말할 수도 있다. 12학년 선배들은 SAT를 준비하고 있는 10학년 학생들을 보며 ‘쥐안’하다고 놀라곤 한다. 선배들 때만해도 12학년에 SAT를 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현실은 10학년에 이미 SAT점수를 완성시킨 학생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10학년인 우리가 보기엔 9학년도 매우 ‘쥐안’하다.
네이쥐안의 예를 들어보자. 시험 보기 바로 1주일 전, 한 친구는 주말 내내 시험공부 대신 영화 4편을 봤다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이 말은 십중팔구 사실이 아닐 것이다. 이 친구는 주말 내내 쉬지도 못하고 공부를 계속 했고, 다른 친구들은 얼마나 공부했을 지에 대해 생각하며 전전긍긍해 했다. 그리고 학교에 오자마자 친구들에게 주말 내내 놀았다고 하면서 친구들의 눈치를 살핀다. 학교에서 들은 또다른 이야기로, 한 학생은 게임할 때 일부러 스크린샷을 많이 찍어놓은 다음, 시험 기간만 되면 마치 그때 게임한 것처럼 모멘트에 올린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서 “적”들의 경계심을 낮추고 그 틈을 타 공부를 하는 것이다.
공정한 싸움인가
결국 네이쥐안은 경쟁이다. 우리는 성적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교외활동에서도 ‘쥐안’하다. 친구가 가입한 동아리나 경시대회에는 무조건 따라서 함께 한다.
우리는 네이쥐안을 탄생시킨 이 시스템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 봐야할 필요가 있다. 과연 이건 공정한 싸움일까? 물론 순전히 본인의 노력으로 성적이 잘 나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과외 선생님이나 학원의 도움을 받아 성적을 향상시킨다. 요즘은 대회만 한번 나가면 수천 위안은 순식간에 없어진다. 몇천 위안에서 몇만 위안까지 가격은 다양하다.
1만 위안의 논문 대회, 6000달러의 리서치 프로그램, 경시대회 준비 전문 학원들. 뿐만 아니라 돈만 내면 교외 활동, 대회, 자기소개서까지 명문대 정도는 갈 수 있게 포장시켜준다. 물론, 비상식적인 비용을 내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가정의 학생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네이쥐안 때문에 대회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참가비와 지도비는 점점 더 하늘을 찌른다. 돈이 많아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상황은 과연 누가 만들어냈을까? 네이쥐안의 결과인 것이다.
네이쥐안을 대하는 법
극심한 경쟁에 지쳐 아예 탕핑(躺平)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탕핑이란 무의미한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더이상 성공에 목을 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에서 탕핑은 마치 모든걸 포기하겠다는 것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지만 그건 탕핑의 의미가 아니다. 탕핑은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고, 남들과 다른 것에 초조해 하지 않으며 본인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힘들 때 조금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탕핑이다. 무의미한 네이쥐안 속에서, 각자 자신만의 길을 걷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학생기자 김리흔(상해중학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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