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생기가 넘쳐야 할 상하이는 오랜 침묵으로 이 잔인한 계절을 견뎌냈다. 봉쇄, 격리, 감봉, 무소득, 실업, 적자…… 부정하고 싶은 잔혹한 현실에 마음 속에서 ‘상하이를 떠나라!’는 외침이 절로 메아리친다. 누군가는 16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밤새 상하이를 벗어났다고 하고, 누군가는 용기 내어 문 밖을 나섰지만 이동 제한에 막혀 울며 겨자먹기로 상하이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서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상하이를 지킨다.
떠나느냐, 남느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잔혹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상하이 시민들의 ‘탈 상하이’ 의향을 상하이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상하이와우(Shanghai WOW)가 조사했다. 푸동공항 밤새기 공략, 상하이 탈피 계획, 상하이 떠나 고향 가기 등의 이슈가 상하이 현지 시민들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도시 전역에 수백 개의 설문조사를 배포해 보다 솔직한 상하이 시민들의 심정을 들여다봤다.
응답자 절반 이상 “상하이 떠날까” 생각
이번 설문조사 응답자는 25~35세 상하이 시민으로 여성 응답자가 남성보다 소폭 많았다. 응답자의 월 수입은 1만 위안~5만 위안 사이로 다양했다.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약 90%가 40일 이상 봉쇄됐다고 답했다. 봉쇄 기간이 50일 이상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46.1%로 가장 많았고 40~50일이 43.7%, 30~40일이 8.7%로 그 뒤를 이었다. 15일 이내라고 답한 응답자는 0.5%에 불과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상하이를 떠날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7.3%였다. 이들 중 절반(52.5%)은 그저 현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다고 답했다. 이 밖에 여행, 가족, 일 등으로 상하이를 떠나고 싶다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상하이를 떠나고 싶다고 답한 응답자 중 47.5%는 상하이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장기적으로 생활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이미 상하이를 떠나 타 도시로 이동한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1%에 불과했다. 이들의 이동 방식은 자가용, 기차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들은 상하이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으로 이동 수단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상하이를 떠나는 주 교통 수단으로 기차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홍차오 기차역으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아 보인다. 현지 SNS에는 1000위안이 넘는 택시 비용을 지불했다거나 수십 킬로미터를 자전거 타고 갔다거나 10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는 등의 기상천외한 ‘탈상하이 경험담’이 공유되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응답자 중 18%는 “지역 이동의 어려움 때문에 전염병 상황이 끝나면 상하이를 떠날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두 달여 간의 봉쇄로 직장을 잃거나 수입이 사라진 응답자 비중은 전체의 4.4%로 나타났다. 코로나 상황이 직장 생활에 아무 영향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47.6%, 일부 영향을 받아 소득이 줄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26.7%, 정상적인 근무가 불가능해 수입이크게 낮아졌다고 답한 응답자는 13.%였다.
다만 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탈 상하이’ 의향에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소득에 영향을 받지 않은 응답자도, 소득이 줄었다고 답한 응답자도 상하이를 떠나고 싶어 하는 비중은 30% 내외로 눈에 띄는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다.
상하이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하이를 떠나고 싶다고 답한 응답자 중 54.2%만 현재 계획 중이거나 이미 상하이를 떠났다고 답했고 나머지 45.8%는 그저 생각만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상하이에서 생활한 시간이 오래될수록 이 도시에 남겠다는 의지는 더 강했다. 실제로 상하이에서 생활한 지 1~5년된 응답자 중 떠나겠다고 답한 비중은 30.2%, 5~10년은 46%로 높았으나 10~20년, 20년 이상 거주한 응답자 중 각각 25%, 16.7%에 그쳤다. 한편, 상하이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 중 상하이를 떠나고 싶다고 답한 응답자 비중은 전체의 29.3%였다.
현재 직장을 찾고 있거나 이미 퇴직한 이들의 상하이를 떠나고 싶은 의지는 재직자, 학생보다 월등히 높았다. 학생, 현 직장인 중 상하이를 떠나고 싶다고 답한 응답자 비중은 각각 22%, 21%였으나 구직자, 퇴직자는 절반을 웃도는 58.3%, 54.5%에 달했다.
상하이를 떠나고자 하는 의지는 월 소득이 높을수록 더 강했다. 월 소득 10만 위안 이상인 응답자 중 ‘탈 상하이’ 의향을 밝힌 비중은 55.6%로 가장 높았고 5만~10만 위안 45.5%, 2만~5만 위안 42%, 1만~2만 위안 31.3%, 5000위안 이하 22.2%, 5000~1만 위안 17.7% 순으로 많았다. 실제로 한 고소득자는 “상하이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며 현재 가족과 함께 이민 갈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하이를 떠나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36.7%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국내∙외 고정 거주지를 보유한 도시로 이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28.3%는 일자리에 따라 이동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한편, 결혼, 연애 등 응답자의 감정 상황은 상하이를 떠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결혼 여부, 자녀 유무, 애인 유무 등과 상관없이 상하이를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비중은 30% 내외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상하이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주 이유로 상하이에 대한 애정, 가족, 일을 꼽았다. 실제로 사랑하는 상하이를 한 번도 떠날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답한 비중은 33.8%로 가장 높았고 이어 가족이 26.8%, 기타 일 16.2%, 일 15.5% 순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81%는 상하이에 남게 되면 소득 감소, 사재기 습관, 안전감 부족, 경기 침체, 이동 제한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상하이를 떠날 계획이 있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은 상하이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중 57.8%는 타 도시로 이동하는 것은 일시적인 조정으로 향후 상하이에서 다시 직장 생활을 할 것이라고 답했고 나머지 42.1%는 상하이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