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석하게도 서울이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네 같은 강북의 변두리도 아니다. 한창 아파트 건설 바람이 불면서 개발된 잠실의 아파트 촌이다. 우리집은 6층의 맨 끝집 608호였는데, 신기하게도 6층의 여덟 가구 중에 네 집에 나와 동갑 아이들이 있었다. 모두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다녔고, 그 중에는 같은 반인 남자아이도 있었다.
드라마였다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이들이 되었고 그렇게 이야기가 전개되었겠지만, 현실은 쭈삣거리는 어색한 공기만 가득했던 사이들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우리들은 남녀 같이 허물없이 어울려 놀기에는 이미 커버렸다. 어쩌다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치면 서로 외면하면서 지나가기 바빴다. 그곳에서 스무 살까지 살았으니, 어찌되었건 ‘나의 살던 고향’이기는 하다.
하지만, 내게 고향의 이미지는 늘 바다와 산과 밭이 있는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 정취이다. 초등학교 방학 때마다 바닷가 중소도시에 있던 외갓집에서 머물렀던 기억 때문일까,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아버지 전근 지를 따라 지방 소도시에 잠시 살아서일까, 수렵 채집 사피엔스의 후손으로 자연으로의 회귀본능 때문일까. 나고 자란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에 관계없이 무의식 중에 마음이 끌리는 곳,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방영 중인 두 편의 드라마는 봉쇄 생활 중인 나에게 고향의 정경을 선사하며 힐링을 가져다 주고 있다. ‘추앙’이라는 단어와 구 씨로 유명해진 ‘나의 해방 일지’는 경기도에서도 한참 외곽에 있는 농촌이 배경이다. 염 씨네 가족 삼 남매는 서울로 3시간 이상 걸려 출퇴근을 하면서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주말에는 집 안의 농사일을 돕는 것이 당연한 일과이다. 이 드라마가 화제가 되고 있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내겐 좀 다른 이유로 소중하다.
삼 남매들은 마을버스에서 내려 양 옆에 논밭이 펼쳐져 있고 가로등도 듬성한 시골길을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가족들과 함께 엄마가 진짜 차려준 것 같은 저녁밥을 먹으며 무뚝뚝한 식사 시간을 보낸다. 가끔 그 자리에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동네 친구들이 끼기도 한다. 너무나 평범한 그 장면들이 왜 그렇게 좋은지. 보고 있으면 나 역시 삼 남매 중의 한 명이 된 듯, 우리집이 저기 인 듯, 내 고향이 그곳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어느 날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나의 자매들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또 한 편은, 누군가 표현하길 ‘제주도 버전 전원일기’라는 ‘우리들의 블루스’이다. 노희경 작가와 초호화 캐스팅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된 드라마이다. 출연배우들이 구사하는 제주도 방언부터 현지인들의 실제 삶을 화면으로 옮겨온 것 같이 사람 냄새, 바다 냄새를 풍기며 리얼리티로 눈길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제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쭉 자라고,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 없이 평생을 지척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 간의 우정이 못내 부럽다. 가끔은 그 친구들이 징글징글하겠지만, 결국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 들일 테니.
심란한 봉쇄 기간, 그 동안 나에게 없었던 고향과 고향 친구들을 주말마다 만나러 다니면서 버티는 중이다. 경기도 어느 농촌마을에도 갔다가, 해녀 삼촌들과 친구들이 있는 제주도도 다녀온다.
나의 살던 고향은, 정처 없는 내 마음이 내려앉아 숨 돌리며 쉴 수 있는 곳….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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