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름의 들어서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송송 솟아나는 날,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거실에 앉아 거두어 놓은 빨래를 갠다. 네 식구의 여름 빨래는 작은 산을 이룬다. 매일 집에서 홈트레이닝으로 땀을 빼며 운동을 하는 남편의 빨래가 제일 많고 두 달 가까이 온라인 수업으로 외출을 할 필요가 없는 아이들의 옷은 얼마 안 된다. 최근 알록달록 원색 운동복으로 인해 내 빨래 양이 눈에 뜨게 늘어난 걸 보자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들이 올라온다.
상하이 봉쇄가 60여 일을 넘어서자 이제 봉쇄의 ‘봉’자만 들어도 진저리가 쳐진다. 사월 초 푸동 푸시의 전면 상하이 도시 봉쇄는 며칠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끝나기는커녕 아파트에는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철문을 설치하고 도로에도 철판으로 가림막을 설치해 통행을 금지시켰다. 사람들은 집밖을 못 나가고 상점은 문을 닫았으니 도시 전체가 멈춘 느낌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각자 가지고 있는 생필품과 음식을 교환하고 공동구매로만 먹을 것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다. 평소 마트의 카트 안에 다른 사람이 사는 물건만 봐도 보면 우리가 사는 데에 필요한 건 정말 많다. 그런데 지금은 이걸 다 공동구매로 사야 한다. 물건이 바로 배송되는 게 아니라 공구가 성공된 후 며칠 후 에야 배송이 되고 물건을 찾으러 정문으로 나가야 하니 분실되는 일을 빈번했다. 매일 핸드폰에서 눈을 뗄 수가 없고 먹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싶었다.
가족이 모두 집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집은 회사가 되고 학교가 되니 집안에서 말도 크게 하기 어렵고 인터넷 통신은 끊어지기도 하니 모두 난리다. 혼자서 이 난리를 겪는 게 아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먹을 것도 구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스스로 위로도 해보지만 집안에서 쉴 수도 없고 각자 다른 시간에 식사를 하니 집안 일이 끝이 없다. 무엇보다 힘든 건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과 막연함이었다.
약속된 봉쇄 해제일이 되어도 봉쇄는 풀리지 않고 사람들은 여전히 공구에만 열심이고 항의해볼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아파트 내 중국인 단톡방에는 단지 내 잔디밭에서 골프 연습을 하는 남성을 촬영해 공유하며 한국인 일거라는 둥 지각이 없다며 뒷담화하는 것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잔디 위에 텐트를 치고 큰소리로 떠들고 먹고 마시며 심지어 고기를 굽고 하면서 거기에 대해서는 어떤 얘기도 없는 모습에 울화가 치밀었다. 다 각자의 방식으로 이 전쟁과 같은 시기를 극복하는 걸 거라 좋게 생각도 해보았지만 창 밖을 보며 이게 언제 끝날지 모르니 답답한 마음은 더 심해졌다. 스트레스인지 면역력 저하인지 다리 전체에 피부가 빨갛게 부어 오르고 가려워 잠을 잘 수 없었다. 병원을 갈 수도 없고 원인을 모르니 아무 약이나 바를 수도 없었다. 구호품으로 받은 양배추를 크게 떼어 덮어서 열을 내리며 그저 견디어 낼 뿐이었다.
남편은 땀을 흘리는 게 좋을 거 같다며 운동을 권했다. 아침 저녁으로 틈만 나면 걸어 일주일간 매일 2만보의 걸음을 채웠고 공구 물건이 오면 수량을 확인하고 동 호수를 확인해 나누어 주는 봉사 일도 자원해 돕겠다고 나섰다. 주민들은 손수 뜬 수세미를 전해주기도 하고 간식을 나누어 주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었다. 내가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감사를 받으니 기쁘고 즐거웠고 덕분에 아파트 주민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이웃 한 분과 지나가는 말로 아침에 배드민턴을 치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아침 산책을 하는 다른 이웃도 함께 합류하게 되고 중국인 주민도 동참하게 되었다. 최근 웃을 일이 없었는데 운동을 하면서 참 많이 웃게 되었다. 오랜만에 치는 공이니 잘 맞을 리 없고 실수를 연신하면서 함께 웃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이리저리 공을 쫓아다니며 땀을 흘리다 보니 조금씩 실력도 느는 것 같았다. 깨끗한 운동복을 챙겨 입고 운동한 후 땀에 젖은 옷을 세탁하는 느낌은 뭔가 뿌듯하고 개운해 이게 ‘카타르시스’인가 싶고 시나브로 내 피부병도 좋아졌다. 저녁마다 함께 걷는 이웃들도 생겨 걸으며 불안한 마음을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된 거 같다.
며칠 전 생각지도 못하게 봉쇄가 풀려 이게 생시인가 싶을 만큼 기뻤다. 힘든 시기를 함께 한 이웃들과는 끈끈한 전우애가 생긴 것만 같다. 두 달 넘은 기간의 봉쇄 경험은 살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봉쇄 속에 좋은 이웃들을 알게 되고 내 몸과 마음에 좋은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내가 봉쇄 속에 잡은 ‘봉’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