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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인류는 코로나를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로 나뉠지 모른다. 6.25와 IMF같은 시대적 경험이 세상을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 놓았듯이. 어찌되었던 우리는 역병을 넘고 또 넘어가며 하루하루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래도 나는 이 어려움 속에서 큰 배움 하나를 얻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역지사지: ‘처지(處地)를 서로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으로, 상대방(相對方)의 처지(處地)에서 생각해봄. 지난 연말 상해로 이동하게 되면서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자유상해’라는 말이다. 그만큼 상하이는 여타 중국의 도시들과 원천적으로 다르다는 이야기. 수도 북경이 주는 묵직함에서 빠져 나와 희망을 품고 상해로 날아왔다. 그런데 이게 왠일! 지난 3달말 전대미문의 도시 봉쇄가 시작되었다. 준비할 틈도 없이 시작한 봉쇄는 정말? 이라는 물음표를 찍기도 전에 번갯불처럼 끝났다.
봉쇄기간 중 우리 생활은 문명이 시작했던 시점으로 돌아갔다. 거주 단지별로 잠긴 탓에 일종의 부족사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들은 직접 만들거나 내가 잘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타인과 교환을 했다. 혼자 구할 수 없는 것은 외지에서 단체로 구매를 했으며 그들은 마치 실크로드를 건너온 서양의 상인 같았다. 목마를 자가 우물은 판다고 내가 그리 움직였다. 초기에는 당장 필요한 쌀, 물, 우유, 계란, 야채들 자체가 귀했다. 구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더 큰 문제는 구매할 길을 알 수가 없었다. 특히 상해가 낯선 내게는 더 했다. 오죽하면 양파 한 망을 구하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다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공동체가 된 마을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곧 꿈속에서나 만나던 귀한 양파를 구할 수 있었고 각종 야채, 고기에 심지어 빵, 과자 등을 공동구매를 통해 사재기하기 시작했다. 이사오며 버리려던 낡은 양문 냉장고가 그 몫을 다하던 봄의 끝자락에 우리는 세상으로 다시 나설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상해에서 이 시간을 보낸 사람이 아니라면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작년 말 코로나의 기승이 하늘을 찔러대던 한국의 상황을 내가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듯이. 직접 경험에 보지 않고는 당신을 이해한다라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여전히 요동을 친다. 3달만에 건너간 푸시 코스트코에서 카트가 넘치도록 쇼핑을 했고 밤마다 타오바오 장바구니를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한다. 이제는 필요한 물건을 바로 살수 있지만 여전히 냉장고를 채운다. 비워야 할것은 냉장고뿐만이 아니다. 코시국에 오른 살에 봉쇄뱃살이 늘어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불안함이 가득한 마음도 다이어트를 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요즘 내 귀가 쫑긋하는 뉴스가 있다. 바로 상하이시의 격리 완화 소식이다. 농담 반 진담 반 가족들에게 점심에 벙개 모임을 갖자고 했다. 아침에 출발하며 전화할 테니 몇 년간의 회포를 풀어보자고. 그 날이 멀지 않음이 나를 춤추게 한다. 그러나 잊지는 말자. 코로나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가슴 속 깊이 새기고 평범한 하루하루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지내자. 나도 나이가 드나 보다. 글에 각설탕 두어 개 녹아있는 라떼 냄새가 나니 말이다. 달달해진 김에 행복의 지도를 새로 그리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내일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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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몽(snowys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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