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상하이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와이탄이었다.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떨고 있는 손을 다른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젊었을 적 연인을 나이 들어 다시 만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그동안 갖고 있던 좋은 인상이 망가지는 건 아닐까. 살면서 그런 실망을 제법 겪었기에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
로맹 가리의 마지막 소설 <노르망디의 연> 한 대목이 떠올랐다.
“네가 3년 동안 그토록 열렬히 줄곧 상상해 온 그 아가씨를 다시 만나게 되면…… 온 힘을 다해 계속 그 아가씨를 만들어내야 할 거야. 틀림없이 네가 알았던 여자와는 아주 다를 테니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연락이 끊긴 릴라를 애타게 기다리는 뤼도에게 팽데르 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4년 만에 뤼도가 릴라를 만났을 때, 릴라는 정말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독일군 장교의 여자라고 불리는 릴라는 분명 뤼도의 기억 속 릴라가 아니었다.
와이탄은 내가 밀월의 시기를 보낸 곳이다. 아침이면 뱃고동 소리에 눈을 떴다. 실은 알람보다 먼저 울린 뱃고동 소리에 아침잠을 설친 것이었지만,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그마저 달콤했다. 저녁이면 거실 창문 앞에 그와 나란히 앉아 반짝이는 야경을 바라보았다. 네온사인 불빛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꿈을 꾸면서. 겨울이면 에어컨 온풍이 시원치 않아 이불 속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아야 했지만, 그 어떤 추위도 서로의 체온이면 충분했다.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상하이의 상징인 와이탄과 유유히 흐르는 황푸강, 강 건너 루자주이의 고층건물들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9년 동안 머물렀던 베이징은 도시 전체가 커다란 성(城)이다. 반면 상하이는 강변, 갯벌을 뜻하는 탄(滩)의 도시다. 베이징이 울타리를 두르고 지키는 곳이라면, 상하이는 활짝 열어놓고 물 건너오는 이방인들을 맞아주는 곳이다. 그런 개방의 도시를 두 달 넘게 봉쇄했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다시 만난 상하이. 전쟁의 상흔만큼은 아닐지라도 여기저기 상처와 흉터가 보인다. 한때 10만이 넘었던 한국 교민도 이제 겨우 7천여 명 남았다는데, 여전히 이곳을 떠나는 이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아내의 단잠을 위해 불편을 무릅쓰고 팔을 내어주던 남편도, 그의 팔베개 없이는 단 하룻밤도 잠들지 못했던 사랑스러운 아내도 이제 없다.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삶 속에서 우리 모두는 손상되거나 추락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실망을 준다. 상상은 바로 그런 순간에 필요한 게 아닐까. 현실에서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을지 모르는 사랑하는 이의 존엄과 아름다움, 가치를 붙들고 하늘에 연을 띄우듯 띄울 수 있는 마음. 팽데르 선생님의 말처럼 상상 없이는 바다도 한낱 짠물일 뿐일 테니까.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 몸을 팔아 겨우 생명을 유지하느라 죄책감과 수치감 때문에 뤼도를 만나는 것마저 두려워하는 릴라에게 뤼도는 이렇게 말했다.
“넌 여기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어. 늘 여기 남아 있었어. 넌 나를 떠난 적이 없어.”
글·사진_ 윤소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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