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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 민음사 | 2021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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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메마른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핏빛 자오선은 잔인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무너진다. 처음 접하는 사막의 마른 먼지가 풀풀 나는 듯하고, 지글지글 태양이 끓어오르다 못해 말라 타버릴 것 같은 메마른 상황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문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책을 읽는데 나도 목이 말라진다. 내용은 무섭고 흉흉하고 인간이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지옥인데, 문체가 너무 흥미롭다. 선혈이 낭자하고 사람은 동물과 같은, 아니 동물보다 못한 상태로 목숨을 잃어가는 처절한 현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한다.
헤밍웨이와 비견되는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코맥 맥카시의 책이다. <로드>라는 제목의 책으로 더 유명한 작가의 이 책은 서부의 장르 소설임이 읽는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건조하고 묵시록적인 느낌을 독자가 날 것 그대로 느끼게 한다. “구걸의 나날이고 도둑질의 나날이다. 자기 자신을 제하고는 개미 한 마리 없는 길을 나아가는 노새 위의 나날이다.” 얼마나 아무것도 없으면 개미 한 마리 없는 길일까.
처음 읽었을 때는 사람의 목숨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책의 내용에 충격을 금치 못해 재미있게 읽다가도 멈추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다른 의미의 건조한 세상이 되어버린 요즘 읽으니, 그 참담한 상황이 잘 느껴진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이름조차 없는 소년이다. 언제 태어났는지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피에 물들고 폭력이 난무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상황을 그림처럼 생생한 문체로 그려낸다. “아침에 오줌 빛 태양이 어스름한 먼지 유리판 너머로 형체 없이 떠올랐다.” 이 얼마나 생생한 문체인가.
“네 녀석이 태어난 밤에, 1833년도였지, 사자자리인지 뭔지가 얼마나 대단하게 쏟아지던지. 하늘에 시커먼 구멍이라도 뚫린 줄 알았다. 북두칠성 국자가 뒤엎어지면 그럴까.”
별이 쏟아지던 날 태어난 이름도 부여되지 않은 이 소년이 어떠할지 궁금하여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다. 너무 잔인하여서 읽기 유쾌한 책은 아니다. 강자의 폭력과 사람의 존폐 위기 속에 드러나는 악들,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이 승리인 그 상황이 마구 느껴지는 책이다. 법이란 무엇인지. 도덕이란, 종교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1846년 미국과 멕시코 전쟁이 끝난 뒤 벌어졌던 실제 사건들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다.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이 되는 책이다. <신곡>과 <일리아드>와 <백경>을 합쳐 놓은 듯 비범하고 숨막히는 걸작이다.
나은수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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