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이사한 나는 상하이와 친해질 시간도 없이 아파트 안 하얀 벽에 갇혔다. 상하이는 “나한테 왜 이럴까요”하는 생각 하면서 상하이는 어디서 생겼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졌다. 10년 동안 베이징 살면서 한 번도 베이징의 유래가 궁금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상하이 하면 생각나는 멋진 야경의 와이탄, 푸동의 빌딩숲은 180년 전에는 없었다.
지금은 송장(松江)하면 “시내에서 너무 멀어요”하는 외곽지역이지만 개항하기 전까지 상하이의 중심은 송장이었다고 한다. 송장부(松江府) 상하이현(上海县)의 광푸린(广富林) 문화에서 상하이가 시작되었다 한다. 검색을 통해서 본 광푸린 문화 유적지 사진은 예쁘고 특이했다. 물에 잠긴 건물의 모습.. 이 사진만으로도 내 호기심과 관심은 펌핑했다.
광푸린 문화 전시관은 물에 잠긴 모습이다. 수심 2m~6m까지 내려간다. 신기하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열심히 보면서 유추한 결론은 이 지역의 물을 빼고 공사를 한 후 다시 물을 채웠다 이다.
1958년, 농부가 수로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광푸린 문화 유적들을 발견한다.
전시관에는 4000여 년 전 농경문화와 집단거주, 종교, 계급, 통치체제를 보여주는 유물, 유적에서 시작해서 근대 상하이까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몇 천년을 시간 이동하면서 보는 기분이다. 발굴현장을 재현한 인형들은 마치 사람 같아서 몇 번씩 쳐다보게 된다. 이곳에서 량주(良渚) 문화의 무덤 32개, 광푸린 문화 무덤 8개(2008년 출토)를 비롯해 아궁이, 우물, 연회장 등 300여 개가 넘는 유적이 발굴되었다. 광푸린 문화는 하상(夏商) 시대의 마차오(马桥) 문화, 춘추전국시대의 오월(吴越) 문화로 발전한다.
1961년, 고고학자들은 광푸린 유적이 마자방(马家浜) 문화와 송저(崧泽) 문화 사이에 형성된 량주 문화에 속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2,3차 발굴 때는 한나라 때 건축 유물이 출토된다.
B.C.4300~4000년대까지 장강(长江) 하류 지역, 타이후(太湖)를 둘러싸고 발달한 허무두(河姆渡) 문화를 뿌리로 마자방 문화와 량주 문화를 이어서 발달한 신석기 시대 말 문화, 상하이에서 발굴된 최대규모의 규모의 광푸린 문화는 상하이가 단순한 해변 마을이 아니라 문화가 있었던 도시였다는 것이 알리는 고고학적 의미이다.
고고학 전시관은 황하 지역의 토기들과 색상, 장식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 유물과 토기 위주로 전시해 놨다. 광푸린에서 출토된 뼈바늘을 조형물로 세운 골침(骨针)광장, 상하이 타워 52층에 있는 핫한 책방 둬윈수위안(朵云书院)도 있다. 지금은 상하이 외곽의 한 지역으로 분류되지만 한때 사회, 정치, 문화의 중심이었던 송장에서 상하이가 시작됐다.
세계에 어떻게 문명이 4개만 있었겠고 중국이라는 넓디 너른 땅에 황하문명 하나만 있었을까? 이렇게 여러 지역에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있었다는 흔적이 많은데…. 1978년, 베이징대 쑤빙치(苏秉琦) 교수는 중국 문화가 여러 지역에서 서로 주고받으면서 공동으로 발전했다는 구계유형론을 주장한다. 황하를 중심으로 앙사오(仰韶), 롱산(龙山) 문화를 낳은 황하문명말고 장강을 따라 발전한 신석기시대 유물과 유적이 이렇게 많다. 4000여 년전, 신석기 시대 찬란한 광푸린 문화는 물 속에서 지금도 빛나고 있다.
(사진. 글_ 제갈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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