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이 상하이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된 때는 만 7세와 만 4세. 한국에서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시기였다. ‘아이들이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교육을 받는다면?’이라는 물음을 던져봤을 때 한국 교육에서 부딪히는 몇몇 한계들을 채워줄 수 있고,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떠오름과 동시에 아이들의 한글과 한국역사 교육에 관한 고민 역시 내 머리 속 한 켠에 자리잡게 되었다. 해외에서 살지만 한글과 한국사에 대해서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익숙한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오롯이 가정에서의 역할로 남겨진 한글과 한국사에 대한 교육은 절대 쉽지 않은 일임을 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상하이. 일제강점기때 크고 작은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도시이다. 신천지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자리잡고 있으며, 홍커우 공원(현 루쉰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독립운동에 큰 획을 그은 매헌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이 있는 도시이다. 얼마전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하이 서거91주년을 기념하는 ‘청춘음악회’가 열렸고 큰 아이는 상해한인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서 <청춘음악회>에 2년째 참여할 수 있는 뜻 깊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일왕의 생일 축일 기념행사에 야채상으로 가장하여 진입한 후 직접 제조한 폭탄을 넣은 도시락을 던져 일본 수뇌부를 죽게 하고, 그 자리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같은 해 12월 19일 사형당하게 된다.
큰 아이의 연주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윤봉길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고, 책에서 읽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깊게 와 닿을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 폭탄을 던지고 잡힐 것을 예상했을 텐데 무섭진 않았는지, 그리고 지금 너가 그 분이 하신 일을 기념하는 일에 연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고 뜻 깊은 일인지 사뭇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작년 '청춘음악회' 연주 후에는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치르기 전 김구선생님에게 준 시계를 기념품으로 받기로 했다. 아이와 시계를 들여다보며 “전 이 시계를 한 시간 밖에 쓰지 못합니다”라며 김구선생님과 시계를 바꾼 그때의 심정을 상상해보았다. 그 시계는 아직도 큰 아이 책상에 고이 놓여있다.
학교에서 미국 역사를 배우고 미국 대통령의 연대기를 술술 이야기하는 두 아이에게 한국 역사는 아직 어렵고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상하이에 살고 있기에, 또한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음악회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서 그 분에 대해서 만큼은 지식으로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감사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날이 선선해지면 아이들과 함께 루쉰공원에 있는 매헌기념관에 다녀와야겠다. 91년전 나라를 위해 도시락 폭탄을 던진 현장을 직접 가보고 윤봉길 의사의 삶과 그분의 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것도 이 곳에서만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뜻 깊은 역사교육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윤봉길 의사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게 소개해 줄 수 있는 아들들이 되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을 담아본다.
잎새달스물이레(abigail98@naver.com)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