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몸이 제멋대로 마음을 휘젓는 밤, 무작정 밤거리를 헤맨다. 휘황한 불빛 사이로 피라미드처럼 뾰족한 에메랄드 빛 지붕이 시선을 끌었다. 개츠비가 믿었던 ‘저 부두 끝에서 밤새도록 반짝이는 데이지의 초록색 불빛’처럼 미래의 환희를 약속하는 걸까.
문을 밀고 들어서니 브라스 악기의 경쾌한 리듬이 들려온다. 이미 홀 중앙 무대에서 밴드 연주가 한창이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
재즈는 자유의 음악이다. 같은 곡을 연주해도 매번 똑같이 연주하지 않고 즉흥 연주로 연주자의 개성을 살린다. 하지만 내 귀에 들리는 연주는 영화 타이타닉 주제곡이나 ‘위에량다이뱌오워더신(月亮代表我的心)’ 같은 익숙한 곡인데다, 즉흥이라곤 하나 없는 틀에 박힌 연주뿐이었다. 심지어 음정과 박자를 틀리기도 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는데,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던 애쉬 블론드의 백인 남자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유가 느껴지지 않나요?”
“자유라고요? 낡은 구닥다리 형식밖에 안 들리는데요.”
서툰 연주가 그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를 힐난하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평화가 없으면 자유도 없죠.”
그의 설명은 이랬다. 내 눈 앞에서 연주하던 밴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 밴드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바 있다. 할아버지들이 함께 매일 밤 재즈를 연주한 게 1980년부터라고 하니 이미 40년도 더 넘은 셈이다. 각각의 연주가가 음악을 시작한 건 1940년대부터라고 하니, 그들이 음악을 붙들고 겪었을 세월과 음악을 나 같은 조무래기가 잠깐 듣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일본의 침략과 독립운동, 국민정부와 공산당의 국공내전, 끔찍했던 문화 대혁명, 그리고 마침내 승자독식의 고도자본주의까지…. 거친 역사의 물결 속에서 밴드는 멈추지 않고 재즈를 연주했다. 저 머리 희끗한 음악가들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붙들고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그 오랜 시간 한결같이 재즈를 연주했다.
“평화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붙들고 있는 것, 변함없이 지켜내는 것 아닐까요?”
재즈 바가 있는 호텔의 이름은 Fairmont Peace Hotel(和平饭店)로 과연 ‘평화’를 상징하는 상하이의 아이콘이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
그날 밤 내가 들은 건 서툰 연주라는 음악의 형식뿐이었다. 안에 담긴 연주가들의 열정과 사랑, 인내, 그리고 평화라는 내용을 읽어내지 못했다. 재즈의 즉흥 연주도 엄밀한 내적 방법론에 의해 진행된다.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연주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자유와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익숙함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진행한다.
한없이 나 자신이 흔들릴 때면, 평화 호텔에서 재즈를 연주하고 있을 백발의 연주가들을 떠올린다.
글·사진_ 윤소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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