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포털 사이트를 이용해봤다면, 한 번쯤은 눈물이 그렁그렁 한 ‘페페 개구리(pepe蛙)’와 힘없이 늘어진 ‘절인 생선(咸鱼)’ 캐릭터를 이용한 밈(meme, 짤방)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를 이용한 밈은 대부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블랙 코미디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조적인 유머는 비단 밈에서뿐 만이 아니라, 중국 전반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유행이 일종의 문화로 발전된 것이다.
‘상문화(丧文化)’란?
중국어로 ‘상(丧)’은 ‘상실하다’, ‘좌절하다’, ‘의욕이 꺾이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각박한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꿈을 잊은 채 판에 박힌 삶을 살아가는 대다수 젊은이들의 자조적인 정서가 밖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상문화다. 결국 상문화는 일종의 ‘상실’이나 ‘좌절’의 문화인 셈이다.
이러한 상문화를 대표하는 세대는 80, 90后(80, 90년대 출생자)이다. 중국의 신문 평론가인 정위리(曾于里)는 “상문화는 삶이 고단한 젊은이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항의를 표현하는 것”이라며 “상(丧)의 심리 상태는 젊은 층이 자기 스스로 기대와 스트레스를 낮춰 만약에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크게 절망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자기방어 반응”이라고 상문화를 정의했다.
상문화의 원조는 따로 있다. 바로 1994년 방영된 중국의 시트콤 <워아이워지아(我爱我家)>의 ‘거요우탕(葛优躺)’이다. 이는 중국의 유명 배우 ‘거요우(葛优)’가 소파에 누워있는 모습이 폐인과 같다고 해서 유행하게 된 말로, 의욕이 없는 무기력한 상태를 일컫는다. ‘거요우(葛优)’의 극 중 캐릭터 ‘기춘생(纪春生)’은 남의 집에 얹혀살며 어떠한 일도 하지 않는다. 먹지도, 마시지도, 목욕 또한 하지 않는 그는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며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낼 뿐이다.
기춘생(纪春生)이 무기력하게 소파에 늘어진 모습은 절인 생선(咸鱼) 캐릭터를 연상케 한다. 출처: 爱玩网)
이러한 생활방식은 물론 건강한 삶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 시대의 청년문화와 딱 들어 맞는다. 그의 비관적인 인생관은 초과 근무, 스트레스, 갈수록 돈벌이가 어려워지는 현실에 시달려온 청년들의 내면 상태와 맞물리는 것이다.
중국 젊은이들은 ‘포기했다’, ‘하기 싫다’, ‘관심 없다’, ‘귀찮다’ 등의 표현을 할 때 ‘거요우탕(葛優躺)’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이 표현이 마치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의 의욕을 이토록 꺾은 것일까?
90后는 ‘중년의 위기’ 겪는 중?
(’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 원인. 출처: 钱塘大数据)
중국의 젊은이들은 이러한 공허함을 느끼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중년의 위기, 독신, 비싼 집값, 996(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을 일하는 것을 의미)과 야근’에서 비롯된다고 응답했다. 이 응답을 통해, 이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나날이 오르는 집세를 버거워하며, 독신생활에서 비롯되는 공허함으로 인해 무기력한 ‘丧’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이는 중년의 위기의 경우 80后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중국의 90后 또한 이 경우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 봤자 서른 살 초반인 90后는 왜 자신이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
사실 90后가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말은 자조 섞인 한탄 같은 것이다. 비슷한 예로 중국의 인터넷상에서 사용되는 ‘위기의 90년 대생(危机的90后)’ 이란 말은 2017년 생겨난 것으로, 유엔에서 청년의 나이를 만 15~24세로 정의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자 당혹감을 느낀 중국의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이러한 정의는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중년이 되어버렸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유엔에서 청년의 나이를 만 15~24세로 정의했다는 소문을 담은 뉴스. 출처: 微博)
당시에 유행했던 농담으로는 ‘그래서 내가 살찐 건 그냥 살찐 게 아니라 나잇살이야((所以我现在的胖不是普通的胖,是中年发福)’,‘엄마가 나이도 어린 게 무슨 경추 안마기에 족욕통이냐고 물었다(我妈问我年纪轻轻用什么颈椎按摩器,泡什么足浴桶)’와 같은 것들이 있다. 이후에 이는 근거 없는 소문이라 밝혀져 논란은 사그러 들었지만, ‘중년의 위기(中年危机)’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의 의미보단 ‘이룬 것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나이만 들어 느끼게 되는 위기감’을 일컫게 됐다.
90后는 자신이 느끼는 초조함과 막막함, 그리고 무력감 같은 심정을 인터넷에 유머라는 형식으로 털어놓게 되었다. 사회 분위기와 시장 흐름에 민감한 중국 기업들은 자국 청년들의 이런 정서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키워드를 잡아 새로운 소비 시장을 만들어 냈다.
무능해도 괜찮아, ‘爱无能’
상문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며 성공을 거둔 사례는 대표적으로 ‘상차(丧茶), 희망 없는 요구르트(没希望酸奶)’ 등이 있다. 그중 2017년 중국의 밸렌타인데이에 오픈한 ‘사랑 무능(爱无能, Love Disabled)’이라는 이름의 술집은 인기를 끌며 왕홍들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자커(ZAKER)와 어러머(饿了么)의 합작으로 탄생한 이 술집은 메뉴판부터 남달랐다. ‘50% 애매한 과일주(50%暧昧水果酒)’, ‘백 년 고독의 흑맥주(百年孤寂纯黑啤)’, ‘안정감 0도의 탄산수(0度安全感气泡水)’ 등 각 메뉴마다 연인 관계에서의 ‘丧’을 담은 색다른 분위기의 술집은 청년들에게 기분 좋은 일상의 출구가 되어주었으며, 가벼운 유머를 통해 공감을 얻으며 이들이 겪는 ‘사랑의 무능’을 치유했다.
(해당 ‘爱无能’ 술집의 메뉴판. 주류마다 이색적인 테마들이 눈에 띈다. 출처: 바이두)
그러나 이러한 트렌드를 잘못 해석한 기업도 있다. 2017년 5월경, ‘왕이윈음악(网易云音乐)’ 에서는 어플 이용자들에게 ‘노래 듣는 걸 이렇게 좋아하니, 틀림없이 생활이 힘들 거야(你怎么爱听歌,一定活得很难过把), ‘여름은 지나갔는데, 너는 아직도 뚱뚱하네(夏天都结束了,而你还是那么胖)’와 같이 유머가 아닌 조롱에 가까운 말을 담은 알림을 보내 분노를 샀다. 이에 이용자들은 웨이보(微博)에 어플을 지우는 사진을 올리거나 ‘날 丧하게 만들려고 해도 소용없다’는 등의 반응으로 응답했다.
이렇듯 중국의 젊은 층들은 현실에서 느끼는 ‘丧’이라는 감정을 인터넷상에서의 가벼운 농담으로 해소하고 있다. 언뜻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고충을 담은 농담들을, 이젠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학생기자 유수정(저장대 영문학과)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