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커튼을 밀어 제치자 어제 밤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 숙소 건물의 기와지붕과 단아한 정원, 그리고 무엇보다 저 멀리 옥룡설산 뒤편 어디쯤일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푸르스름했던 회색 봉우리들이 모자를 찾아 쓰고 장갑을 챙기며 분주히 나갈 채비를 하는 사이 이내 붉게 물든다. 아침 태양 빛에 몸을 맡기고 찬란하게 빛나는 봉우리들은 아름다웠다. 그렇지, 태양은 늘 저렇게 갑자기 쑥 지평선 위로 올라오곤 하지.
여기는 윈난성 리장 백사촌(白沙村), 지금 같은 시기에는 간간이 차 들만이 지나다닐 뿐 인적조차 드문 옥룡설산 한 자락 끝, 첫 마을이다. 문득 쳐다 본 숙소 표지석에 새겨진 단어들.
“心宿”
마음이 묵는 곳(머무는 곳)
“聼風, 攬山, 悟水” ‘
바람을 듣고, 사방 어디에서든 산을 보며, 물을 느끼다’라는 뜻이리라 내 맘대로 짐작해본다. 바람, 산 그리고 물. 아하, 기가 막힌 표현 아닌가! 이들은 이 자연 속에서 삶의 의미와 멋을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숙소를 나서 마을 쪽을 향해 걷다 보니 어느새 몸은 따뜻해지고 얼굴에 닿는 공기는 차갑고 신선한 걷기 딱 좋은 상태가 된다. 이 허술한 침입자를 못내 용서할 수 없었던지 끝까지 따라오며 사납게 짖어대는 동네 강아지들을 뒤로 하고 계속 걷다 보니 객잔 사이로 민가들이 보인다. 아마도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를 하고 대문을 활짝 열어두는 것이 이들의 풍습인가보다. 덕분에 열린 문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어 내부를 슬쩍 훔쳐볼 수 있었다. 소박하지만 나름 멋스러운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때가 되면 다투듯이 피고 지고 만발할 온갖 꽃들이 나 같은 이방인의 발걸음을 한동안 붙들어 둘 것이다.
정원과 기와지붕 너머 설산이 보인다. 이 집주인은 심지어 저 옥룡설산을 뒷산 삼아 살고 있다! 설산의 정기를 받고 깨끗한 공기와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 같은 도시 여행객이 일부러 이렇게 멀리 찾아나선 행복을 이곳 사람들은 매일 누리고 있다.
단단히 챙겨 입은 방한복 어깨위로 커다란 대나무 광주리를 지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동네 아주머니들(바쁜 걸음 중에도 나를 보자마자 말 타지 않겠느냐며 바로 관광상품 판매를 시도하는 전문성과 노련함을 갖춘), 망토를 펄럭이며 멋스런 가방을 어깨에 척 둘러멘 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빠른 걸음으로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범상치 않은 소수민족 아저씨, 해바라기하면서 추운 몸을 녹여가며 일 때를 기다리던 마을 인부들. 이들은 모두 행복할까, 문득 그들의 표정을 살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도시생활을 떠나 낯선 곳에서 이렇게 행복을 찾듯 저들 또한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보다 더 크고 특별한 행복을 갈구하며 살아 가지는 않을까?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새해 안부를 주고 받던 끝에 친한 동생이 올 해 자신의 모토라고 했던 말이다. 자신에 집중하기,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달성여부를 행복과 혼동하지 않기, 하고 싶은 일 생각해내기, 그리고 이를 미루지 않기. 실패해도 자신을 격려하고 응원하기. 그리고 무엇보다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돌아보기.
엄중한 코로나 팬데믹,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예측하기 힘든 미래. 행복을 논하기 참으로 어려운 시기이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기를 쓰고 행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아니면 오늘 내 눈 앞의 행복은 내일이면 사라지고 없을 테니까.
하이디(everydayne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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