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장애인은 어떤 존재일까? 사전적인 정의로 장애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를 뜻한다. 때문에 사실 모든 질병은 장애를 수반한다. 모든 질병은 신체기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나 ‘장애인’이라는 말은 그 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장애 등급과 편견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따르면 장애인이란 신체적이나 정신적인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국가에서 정의하는 장애는 매우 좁다. 국가에서는 장애의 정도에 따라 장애인들을 지원하는데 장애의 범주를 정해 놓고 등급을 매긴다. 이때 의료적인 기준으로 장애 등급을 판단하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외형이나 기능, 즉 ‘손상’을 가진 사람을 장애라고 정의한다. 이는 행정상의 효율을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장애 장애인들을 향한 차별과 낙인을 강화하기도 한다. 질병과 장애를 구분하기 때문에 모든 장애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바뀌고 있는 시선들
반면 미국이나 스웨덴 같은 선진국들은 장애를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경의 문제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만약 세상에 턱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계단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신체 일부의 어려움으로 애초에 장애인이 활동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 환경이었다면 계단과 턱을 오르는 것이 불편한 사람을 지체장애라고 정의할 필요가 있었을까? 다르게 말하자면, 사회•환경적으로 개인의 특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지점이 생기면 그것이 사회적 의미에서의 ‘장애’라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경’의 문제로 보고 있다.
예로, 미국은 비만을 장애에 포함한다. 비만인 사람은 취직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아, 사회적 의미에서 개인의 특성이 수용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장애로 정의한다. 심지어 스웨덴은 외국 이민자를 장애의 한 영역으로 넣고 있다. 외국 이민자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새로운 접근들은 장애인을 향한 우리의 시선 또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에게 선진국들의 이러한 변화들은 획기적이다.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면 최소한 장애인을 향한 편견과 선입견은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는다면 불쌍한 타인이 아닌, 조금 불편한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학생기자 김민서(상해한국학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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