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명징(明澄)과 ‘직조(織造)’에 이어 작년엔 ‘사흘’이, 올해엔 ‘심심(甚深)한 사과’가 SNS를 달궜다. 아예 ‘금일(今日) 심심한 사과를 드리면서 사흘(3일)간 무운(武運)을 빈다’는 문장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될 정도다.
1%의 문맹률을 가진 우리나라가 문해력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결과는 20년 전, 그것도 그래프나 양식이 있는 문서 문해력에 한정된 수치이며, 최근 자료에 의하면 중위권이나 중상위권은 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 몇 가지 우려할 만한 신호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다 같이 진지하게 검토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첫째, 한국 학생들의 읽기 능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정말 못 읽고 못 쓰는 하위권 학생들의 비율이 2000년 5.7%에서 2018년 15.1%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읽기 영역뿐 아니라 수학, 과학 영역도 2009년에 비해 모두 내려갔다. 읽기 능력이 떨어지면 다른 교과 영역도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혼자서 사회, 역사, 과학 교과서를 읽기 힘들어 포기하는 아이들이 늘어간다. 이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둘째, 한국의 디지털 문해력도 하위에 머물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디지털 정보에 대한 사실과 의견 식별률이 최하위(25.6%)를 기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환경에서 디지털 키즈로 성장한 우리 청소년들이 가짜뉴스에 휘둘리고 피싱에 낚일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많은 미디어에 노출되고 있는 요즘, 적절한 정보 판단 능력과 비판적 사고를 길러줄 필요가 있다.
셋째, 한국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자녀의 학습 격차가 크고, 최근 10년 간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이 결과는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구조에서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아이는 10명 중 한 명 뿐이다. 자기주도 학습이란 애당초 어려운 일이 된다. 이는 개인의 삶의 질 뿐 아니라 미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쨌거나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갈수록 어휘력이 떨어지고 분량이 많은 책을 점점 더 읽기 힘들어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나 학습언어가 외국어인 아이들에게 책 읽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의 장기화는 문해력의 양극화를 가져오고 있다. 즐길 수 있는 매체는 늘어나고, 웬만한 건 인터넷 검색으로 다 나오고, 책 읽어주는 동영상도 넘쳐나는 시대에 아이들은 묻는다.
“꼭 책을 읽어야 해요?”
문해력(文解力)은 말 그대로 글을 읽고 의미를 파악해서 이해하는 능력이다. 사회적 맥락에 따라 의미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인식과 태도, 공감이 연결된 복합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능력은 생각하는 힘을 바탕으로 하기에 모든 공부의 출발이 된다. 생각하는 힘이란 보여주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알려주지 않는 것을 알게 하는 힘이다. 꼭 읽기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사회에서 책임 있는 일을 하려면 말하지 않는 것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낱말 뜻을 검색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 역사, 문화적 맥락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삶의 경험치가 쌓여야 한다.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깊고 폭넓은 독서와 비판적 사유를 통한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결국 책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와 관계가 깊다. 풍부한 독서와 깊은 문해력이 필요한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닌지. 개인적으로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지 않아도 열심히만 살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지만, 문해력 높은 사람이 그러지 못 한 사람보다 소득, 지위, 건강 모든 면에서 큰 격차를 보인다. 대한민국은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해외 시장에 의지해야 하는지라 변화가 빠른데, 유망하고 새로운 사업은 대부분 점점 복잡하고 고도화되고 있다. 문명의 발전으로 사물과 서비스의 수준은 높아지는 만큼 구성원의 수준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부모들이 교육에 목을 매는 것은 욕심 때문만은 아니다. 각 가정은 자신의 아이들이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도록 키워내야 하는 책임도 있지만, 사회 역시 복잡해지는 사회를 이끌어 나갈 미래의 일꾼과 리더들을 길러내야 할 책임도 있다.
책을 꼭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 아이에게 이렇게 대답 해야겠다.
‘안 읽어도 돼. 유튜브 통해서 열심히 정보를 얻어도 돼.
그런데 혹시라도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섰을 때 당황하지 않으려면 책을 봐 두는 게 좋을 거야. 복잡한 세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기에 책보다 더 훌륭한 수단을 인류는 아직 개발하지 못했거든.
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미래를 준비하는 주역 중 하나가 되고 싶다면 책을 읽는 게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건강하게 살아내면서 즐겁게 놀고 운동하고 흥미와 열정을 가지고 미래를 꿈꾸기 바란다’고.
김건영
-맞춤형 성장교육 <생각과 미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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