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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의 ‘상하이 주재원’] 4년 반 만에 깨어난 램프의 요정

[2024-06-03, 14:52:41] 상하이저널
2007년 중국은 따뜻했다

2007년 회사에서 보내 준 연수로 처음으로 중국에 왔다. 모든 것이 신기한 와중에, TV에서 한국 드라마를 방영해 주고 광고에 한국 연예인들이 나오는 등 한국에서 보던 얼굴을 중국에서도 보게 되니, 대륙이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따뜻했다. 

중국 여성들은 한국 여성을 만나면, 자세히 뜯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피부 좋다고 칭찬하며 부러워했다. TV에서 예쁜 한국 연예인들을 보고 모든 한국 여성들에게 적용하는,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 같았다. 좀더 성의있는(?) 이들은 무슨 화장품 쓰냐고도 물어왔다. 

우리 연예인들을 사랑했다

2011년에 베이징 주재원으로 궈마오(國貿)에서 근무하면서는, 지나다니는 중국 여성들이 확실히 예뻐진 걸 느꼈다. 연예인들이 데뷔 후 예뻐지면 '카메라 마사지'를 받았다고 하듯, 중국은 '올림픽 마사지'를 받은 것 같았다. 

이 때에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콘텐츠들을 접할 수 있었다. 매년 한 두 편씩은 우리 영화가 극장에 걸렸고, 우리 연예인들은 중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활동했다. 물건을 사러 상점에 가면 예외없이 모든 점원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한국 노래가 흘러나왔다. 당시 중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패션 상품엔 경쟁적으로 '한국 스타일(韩版)'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우리의 대중문화가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화장품 등 소비재 수출도 화려한 시절을 구가하고 있었다.

중국 여성들은 아름다운 우리의 여성 연예인들을 동경했고, 자기를 공주로 만들어줄 것 같은 드라마 속 우리 남성 연예인들을 사랑했다. 그런 현상에 대해 중국의 남성 네티즌들이 심술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다. 

아시아 최초 여성 대통령에 반했지만

중국은 아시아 최초 여성 대통령이라는 우리 대통령에도 반해 있었다. 그녀의 특별하지만 불행한 개인사와 특히 칭화대에서의 중국어 연설 등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 함께 깊어만 갔다. 택시기사들은 한국 손님을 태우게 되면 대통령 얘기부터 꺼냈다. 

그리고 '사드' 배치가 있었고, 우리 기업들은 불이익을 받았고, 양국 국민 감정이 악화일로를 겪는 중 팬데믹이 찾아왔다. 2022년 초에 다시 밟은 중국은 차가웠다. 3주 간의 시설 격리, 얼마 후 이어진, 지금도 믿기지 않는 2달의 봉쇄 후 자유의 몸이 된 그 해 6월은 이미 여름이었지만, 한·중 관계는 여전히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산업구조 및 국제정세 변화가 더해져 수십 년 만에 대 중국 무역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우리 대중문화가 막혔다

한국 여성에 대한 무작정 피부 칭찬은 지금도 간간히 이어지지만, 대중문화는 꽉 막혀 있다.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 더글로리, BTS, 블랙핑크 등 우리 대중문화는 세계 무대에서 잘 나가고 있지만, 유독 과거 우리를 가장 따뜻하게 반겨주던 중국의 안방과 극장, 그리고 공연장에선 자취를 감췄다. 중국 기획사에 문의해도 한국인 연예인의 중국 활동은 불가능하니 당분간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답이 돌아온다. 사드의 '주인'인 미국의 연예인들은 중국 활동이 가능한데, 왜 우리 연예인들만 안되는지에 대해선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비공식 채널로 우리 콘텐츠를 접한 많은 중국인들은 우리 콘텐츠의 우수성을 인정하며, 칭찬과 부러움을 표시하고 있지만, 상당수 중국 라오바이싱들에게는 점점 잊혀져가는 것만 같다. 한국 콘텐츠 팬이자 한국 화장품 팬인 나는, 중국 친구들에게도 우수한 우리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고, 그들과 같이 드라마와 연예인과 화장품을 소재로 다시 예전처럼 아이스브레이킹하고 재잘재잘 대화 나누고 싶어, 지금의 상황이 아쉽기만 하다. 

중국극장에 우리 영화가 다시 걸릴 수 있을까

이번주 초, 한·중·일 정상회의가 4년 반 만에 개최되었다. 더불어 개최된 한·중 양국 회의에선 FTA 2단계 협상을 통해 상품 뿐 아니라 서비스, 문화, 관광, 법률 등 분야의 상호 개방 확대를 위한 대화를 재개하기로 했다 한다. 현재의 한·중 FTA는 2015년 이전의 양국 산업을 염두에 두고 추진했었는데, 중국의 여러 산업은 이미 우리 수준 이상으로 치고 올라와 있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지금의 한·중 산업 현황을 반영하여 수정·보완이 이루어질까, 우리 대중문화가 예전처럼 중국에 들어오고 아름답고 멋진 우리의 연예인들이 중국 매체에 나와 우리 상품을 광고할 수 있을까? 우리의 훌륭한 영화들이 중국 극장에 걸려 중국인들을 다시 울리고 웃길 수 있을까? 

‘한·중 관계’ 오랜 잠에서 깨어나길

지금 우리에겐 이웃한 강대국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수적이다. 그간 중국은 기술 강국이 되었고 인건비는 높아졌고 이에 따라 소비력도 강력하다. 그러니 우리도 과거의 협력 방식대로가 아닌,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인공지능 등 기술 부문,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신에너지와 환경 부문, 그리고 양국 공통의 사회문제인 인구감소 및 노령화 부문 등에서 무궁무진한 협력 공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중국 지방정부와 국유기업들과 함께 넘쳐나는 협력사업 아이디어를 소통하며 실현시킬 수만 있다면, 바빠서 비명을 지를지라도 행복할 것 같다. 

알라딘의 소원을 들어줬던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한·중 양국 관계 개선도, 우리 상품과 서비스, 문화 진출 확대라는 소망을 들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한·중 관계'라는 지니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꿈틀댄다. 다시 잠들지 않고 오래오래 깨어있게 하자. 그에게 소원을 말해보자. 두근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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